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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유아교육의 상징, '몬테소리'는 왜 아들을 입양보냈을까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최종수정 2017.03.15 09:10 기사입력 2017.03.1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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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와 관련해서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 바로 '몬테소리'입니다. 몬테소리 교육법, 유치원 등 각종 브랜드에 붙은 이름으로 전 세계 유아교육의 상징과도 같은 이름이죠.

이 몬테소리의 실제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교육가였던 '마리아 몬테소리'입니다. 그녀는 19세기 후반 유아교육이란 개념도 잡히지 않은 시대에 태어난 선각자로 현대 유아 및 유치원 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위인으로 평가받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유아교육의 선각자는 정작 본인 아들은 입양을 보냈습니다. 아들이 다 자랄 때까지 아들이 있다는 사실도 숨겼고 공적 자리에서는 조카라고 불렀죠.

이런 모순된 가정사를 가지게 된 것은 몬테소리가 미혼모로서 아이를 낳았다는 당시 사회의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엄청나게 보수적이었던 2차대전 이전 서구사회에서 미혼모는 죄인취급을 받았고 그로인해 아이의 존재를 숨겨야 했던 아픔이 있었죠.

사실 그녀는 교육가로서의 명성뿐만 아니라 당대 이탈리아에서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노력한 여성으로서도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로 의대에 들어간 여성이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네요.

그녀의 아들 마리오는 그녀가 의사로 일할 때 만난 동료, 주세페 몬테사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여성 의사를 가문에 들일 수 없다는 몬테사노 가문의 반대로 결혼은 무산됐고 아들 마리오는 사생아가 돼버린 것이죠.

사생아 스캔들이 터지고 뒤이어 몬테소리 교육법이 스탈린사상과 연관이 있다는 오해까지 불거지며 한때 그녀가 운영하던 유치원이 폐쇄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해가 풀리면서 전 세계에서 몬테소리 교육법을 배우러 교육학자들이 찾아왔다고 하네요.

이런 개인적 아픔을 딛고 그녀는 유아교육의 대부가 됐으며 그녀의 아들 마리오도 자신의 자식들과 함께 그녀를 도와 몬테소리 교육법의 전파에 힘썼습니다. 거저 얻어진 교육브랜드가 결코 아니었던 것이죠.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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