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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시샘]백석의 시를 읽다가 문득 울컥

디지털뉴스본부 이상국 기자최종수정 2017.03.17 06:11 기사입력 2017.03.17 06:11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읽기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은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 백석 /1948.10. '학풍'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이지만, 필명인 백석(白石)으로 잘 알려진 그는 훤칠한 외모에 큰 키의 소유자로, '고흐의 보리밭 같은' 머리 스타일과 빼어난 패션감각을 통해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이지만, 필명인 백석(白石)으로 잘 알려진 그는 훤칠한 외모에 큰 키의 소유자로, '고흐의 보리밭 같은' 머리 스타일과 빼어난 패션감각을 통해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 일제 말기 만주에 살던 백석은 해방이 되면서 신의주로 들어온다. 그 무렵 남한에 있는 친구인 소설가 허준(許俊)에게 편지를 보낸다. (허준은 1946년 단편 '잔등(殘燈)'을 발표한 작가이다. 남북한의 우편물 교류는 1947년까지 허용되었다.) 그 편지 속에 들어있던 시다.

원래 이 시는 제목도 없었는데, 시를 발표할 때 편지 겉봉에 있던 주소를 그대로 시 제목으로 삼은 듯 하다.

어느 목수네 집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인, 그 임시거처가 이 시가 매달려있는 자리인 점을 생각하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은 처연한 직핍(直逼)이다. 이 시는 대개 기승전결의 4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어느 사이에. 어느 사이에! 평화롭고 단란하던 삶은 무엇인가를 좇아 정신없이 헤매는 사이에 흩어져 버린다는 것을 나도 알게 됐다. 어리석은 집착과 건방진 판단들이 결국 벼랑으로 삶을 몰아넣은 뒤에야 문득 주위를 살피고 뒤돌아본다.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나앉을 판인데, 간신히 방 한 칸, 추위를 피할 곳을 얻었다.

백석의 북한시절 가족사진. 아랫줄 오른쪽이 백석, 왼쪽은 그의 세번째 부인 리윤희, 뒷 줄 남녀는 아들과 딸.
백석의 북한시절 가족사진. 아랫줄 오른쪽이 백석, 왼쪽은 그의 세번째 부인 리윤희, 뒷 줄 남녀는 아들과 딸.


시라기 보다는 근황을 전하는 편지의 일부처럼 절박하지만 담담하다. 목수 박시봉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떠도는 시인을 거두어준 고마운 사람이지만 그 또한 가진 게 별로 없었으리라.

아직 흙바닥을 면하지도 못한 습기 찬 방에 삿자리만 하나 깔았다. 바깥에는 겨울 바람이 들이치는 밤에 백석은 떨면서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펼쳐간다. 그게 이 시가 지나가는 길이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코 끝에는 습기 냄새가 감돌고 추우면서도 방은 눅눅하다.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란 말은 너무나 생생하다. 혼자 있지만 그 혼자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일도 벅차다. 손도 춥고 발도 춥고 코끝도 춥고 목 뒤도 추우니 어디를 감싸야 할 것인가. 옛날생각을 하여도 춥고 지금생각을 하여도 춥고 다가올 삶을 생각을 하여도 추우니 어디를 먼저 위로하고 다독여야 할 것인가.

구석구석으로 달려드는 한기에 딱 얼어죽을 판인데 목수네 아낙이 큼직한 질그릇에 짚쪼가리를 넣어 불을 지핀 임시난로를 하나 가져온다. 백석은 이것을 껴안고 지낸다.

손을 쬐고 남은 재에 글자를 쓰기도 하고, 손깍지베개를 하고 누워 뒹굴기도 한다. 손을 쬐는 것은 추위를 면하려는 동작이지만 그 뒤의 것들은 비로소 눅여진 심신이 되어 하는 행동들이다.

글자를 쓰는 일은 무엇인가를 떠올리고 정리하는 일일 것이다. 손깍지베개를 하고 누운 것은 이런저런 생각을 펼치는 중일 것이고, 뒹구는 것은 그걸 떨치려는 마음의 움직임일 지 모르겠다.

백석은 소처럼 생각을 되새김질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그의 마음 속에 떠도는 것들의 결론을 요약하면 슬픔과 어리석음이다. 가슴이 꽉 메어오는 것,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이는 것,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운 것. 나는 마치 스스로 백석이 되어 딜옹배기를 껴안고 있는 것같은 기분을 느낀다. 박시봉방의 들끓던 정념이 여기 세검방의 어느 골목으로 전염된 것처럼 영혼이 화끈거린다.

노년시절의 백석 사진. 북한 공민증에 부착된 증명사진이다.
노년시절의 백석 사진. 북한 공민증에 부착된 증명사진이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은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이 드는 때쯤 해서는,


그런데 희한한 게, 딱 죽을 것만 같던 치욕감과 자학들도 시간이 가면서 옅어지고 가라앉는다는 점이다.

딜옹배기를 껴안고 뒹구는 포즈에는 오직 자기 한 몸에 대한 생각들 밖에 없었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서 창을 바라보고 천정을 쳐다보면서 내 슬픔과 어리석음을 주재하는 더 크고 높은 무엇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는 기(起)와 승(承)을 지나서 이제 전(轉)의 고비를 맞는다. 내가 이토록 한심한 지경에 빠진 것, 혹은 어리석은 행위로 결국 자기를 여기로 몰아온 것. 그것은 나의 뜻이 아니라 나를 굴려가는 보다 높은 누군가의 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은 다시 평정을 찾게 된다.

뜻을 깊이 새기고 닥쳐온 시련을 겸허히 받아들임으로써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야 말로, 지금 내가 하여야할 무엇이 아니겠느냐고 생각을 고쳐먹는 일. 여기까지 왔을 때 백석은 고요해진다. 창과 천정에서 내려온 깨달음. 신세의 추위, 몸의 추위, 마음의 추위가 걷힌 뒤에야 외로운 생각들이 미슬미슬 돋아난다. 그때다.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줏손은 저녁답이다. 눈이 온다. 종이를 바른 문창을 때리는 싸락눈. 추운 마음엔 사실 눈도 귀찮다. 밖에 나가서 걸어보는 것이 아니라, 화로를 더욱 다가 끼고 앉았다.

그런데 무릎을 꿇고 앉았다. 왜 그랬을까. 안도현시인을 그토록 감전시킨(그는 이 구절을 자기 시의 제목으로 쓰기도 하였다), 어떤 생각이 백석의 머리 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먼 산 뒷옆에 바위 옆에 따로 외로이 서있는 갈매나무 한 그루가 그 주인공이다. 어두워오는 저녁답에 눈을 맞고 있는 갈매나무. 마른 잎사귀 위에 떨어지는 싸락눈 소리도 지금 내가 창에서 듣고있는 저 소리일 것이다.

갈매나무를 형용하는 몇 가지 말들은 박시봉방 안에서 떨며 지내는 자기를 말하는 눈물겨운 자존심이다.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시절과 세상이 나를 여기 춥고 구차한 곳으로 데려왔으나 나는 거기에 굴하지 않는 드문 존재이다.

고통을 견인하는 묵묵한 태도는 갈매나무의 굳음을 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스란히 싸락눈을 맞으면서도 깨끗하고 엄정한 기운을 버리지 않는 그런 백석이다. 박시봉방 안에서 들끓었던 존재의 사뇌(思惱)는 이윽고 눈 맞는 갈매나무 한 그루로 자신을 확장하면서 명징한 시안(詩眼)을 읽는 이의 가슴에 박는다. 고통의 시절에 읽는 백석은 달콤한 경전(經典)이다.

눈맞는 갈매나무 성자와, 이 나무를 생각하는 추운 백석을 떠올리지 못하고 지나가는 겨울은 얼마나 슬픈가.

# 백석(1912-1995)은 34세 무렵에 이 시를 썼다. 신의주에서 잠깐 살던 시인은 평양으로 거처를 옮긴다. 1959년 '붉은 편지 사건' 때 북한 정권은 백석을 당성(黨性)이 약한 작가로 분류해 생산 현장으로 보낸다. 양강도 삼수 관평리에서 그는 노동일을 하며 살았다. 그 이후의 삶은 제대로 알 수 없다. 1995년에 돌아갔다는 소식만 전해졌을 뿐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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