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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그 사람들]한반도에 입성한 최초의 유럽인, 세스페데스 신부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최종수정 2017.03.19 08:00 기사입력 2017.03.19 08:00
경남 창원시에 위치한 세스페데스 공원 표지석 모습(사진=창원시)
경남 창원시에 위치한 세스페데스 공원 표지석 모습(사진=창원시)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경상남도 창원에는 '세스페데스 공원'이라 불리는 기념공원이 있다. 한반도에 최초로 발을 디딘 유럽인으로 알려진 스페인 신부,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신부를 기념하는 공원이다. 그는 임진왜란에서 왜군을 따라 종군한 카톨릭 신부로 십자가를 진 다이묘로 유명한 왜군 1군 사령관, 고니시 유키나가와 친분이 깊었다고 한다.

그는 원래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마드리드의 시장이었다고 한다. 1569년에 살라망카의 예수회 신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알레한드로 발리그나노를 따라 인도의 고아 지방으로 건너갔다가 1577년에 일본에 도착해 일본 각지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1585년에는 오사카에서 수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방문을 받았고 1587년에는 히라도, 시마하라 주변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선교활동을 확대해나가던 중,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스페데스는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에서 종군해 나가사키에서 출발하고 대마도를 거쳤다가 조선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의 1차 종군은 풍랑으로 좌절돼 일본으로 바로 돌아갔고 이듬해 12월에 다시 출항해 조선 땅을 밟았다.

이후 2년 간 왜군의 행군루트를 좇아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벌였지만 전쟁터에서의 선교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 조선으로의 출항은 일본 조정의 허가 없이 비밀리에 간 것이었다. 이후 출항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으로 송환됐으며 처벌받을 뻔했지만 고니시 유키나가가 그를 변호해주면서 위기를 넘겼다.

이후 일본으로 잡혀와 노비가 될 처지에 놓였던 조선인 2000여명을 구해준 뒤 세례를 주면서 가톨릭 신자로 만들었으며, 시마하라, 고쿠라 등에서 선교 활동을 계속하다가 1611년 일본에서 사망했다. 그가 조선에 체류하면서 보낸 편지가 아직 남아있다고 하며 당시 그는 조선을 꼬레이(Coray)라고 표기했다고 한다. 기록상으로는 가톨릭 신부 중 최초로 조선에 도착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사실 세스페데스 외에도 임진왜란에 다른 형태로 참여한 외국인은 많았다. 포르투갈 상인들을 통해 흘러들어온 흑인 용병을 비롯해 명나라에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고용하기 시작한 티벳, 미얀마, 태국의 용병부대, 그리고 이들이 끌고 온 코끼리 등 각종 이국적인 동물들까지 합세했다. 명실상부 16세기 당시 세계 최초의 초대형 국제전쟁이었던 셈이다.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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