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가미카제, 일본 우익들도 비난한 사상최악의 작전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최종수정 2017.03.21 11:12 기사입력 2017.03.21 11:11
적 전함으로 돌진하는 카미카제 전투기(사진=위키피디아)
적 전함으로 돌진하는 카미카제 전투기(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이현우 기자]일제시대 미화에 앞장서는 일본 극우세력들조차 치를 떠는 단어가 '가미카제(神風)'다. 일제의 광기가 일으킨 수많은 만행 중 자국민 엘리트들까지 희생시킨 카미카제는 전범들조차 비난 일색인 암울한 역사로 기억돼있다.

당시 최고 엘리트 계층이자 전후 나라를 이끌 유능한 젊은이들을 자살폭탄 특공대로 소모하는 모습을 보고 미국인들도 얼마나 충격을 받았었는지 가미카제란 단어는 영어사전에까지 등재됐다. 영어 'kamikaze'의 뜻은 보통 정신 나갈 정도의 무모함이다.

미국과 서방 언론들이 가미카제란 단어를 하도 많이 써서 지금은 그 발음이 굳어졌지만 원래 일본에서 가미카제는 훈독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음독으로 신푸(神風)라 읽었다. 13세기, 몽골과 고려 연합군이 두 차례 일본을 원정했던 당시 두 차례 모두 태풍이 불어와 여몽 연합군이 결국 패퇴했는데 이 바람을 신풍이라 높여 불렀고 일종의 신화처럼 내려오던 이야기였다. 이것이 태평양전쟁 말기 교조주의적인 일본 군부의 분위기와 맞물려 700년만에 역사의 무덤에서 끌어올려진 것.

미군함대에 충돌을 시도하는 카미카제 전투기(사진=위키피디아)
미군함대에 충돌을 시도하는 카미카제 전투기(사진=위키피디아)

사실 처음 태평양전쟁을 시작할 때부터 이런 정신 나간 작전이 전쟁 말기 나올 수도 있다는 우려는 있었다고 한다. 일본 군부의 수장이자 전시 내각을 이끌었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는 전쟁 3개월 전 일본과 미국의 전력차는 3배 이상이 나서 도저히 미국을 이기지 못한다는 육군성의 보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전력비율은 삼분의 일이지만 일본에는 세계 그 어느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황국정신이 있다" 즉, 되지도 않을 전쟁의 시작은 이 '황국정신'에서 비롯됐으며 이것이 곧 교조주의화 될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1944년 6월, 마리아나 해전에서 참패해 항모함대가 괴멸되면서 일본군은 완전히 패색이 짙어지자 명예를 위한 자살공격 제안이 일본 군부 내에서 고개를 들었다고 한다. 물론 군부 내에서도 엄청난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수많은 조종사들은 명예보다는 고국에 있는 가족들이 연좌제를 당할까봐 두려워 폭탄을 짊어지고 미국 함대에 뛰어들었다. 간혹 살아돌아온 파일럿이 있으면 할복을 시키거나 사살했다고 전해진다.

출전하기 전 신사에 기도하는 카미카제 특공대원(사진=위키피디아)
출전하기 전 신사에 기도하는 카미카제 특공대원(사진=위키피디아)

엄청난 숫자의 파일럿들이 희생됐지만 이 작전의 성과라는 것은 거의 없었다. 애초 소형 전투기에 실을 수 있는 폭약으로 거대한 항공모함이나 전함을 들이박아도 그렇게 큰 피해를 입히기가 어렵다. 대공포를 피해 고공낙하해 정면으로 충돌해도 탄약고나 엔진실에 운좋게 맞지 않는 이상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도박에 파일럿과 전투기를 한꺼번에 소모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행위였다.

그나마 숙련 조종사들을 소모하던 1944년까지는 40% 정도의 명중률을 보이던 가미카제 특공대는 1945년부터는 10% 정도의 명중률에 그쳤으며 그나마도 대부분 전함이나 항공모함에는 생채기 하나 못 내고 규모가 작은 수송함들에게 피해를 줬을 뿐이었다. 대부분 비행기 조종도 제대로 못 배운 신참들까지 전투에 동원한 결과였다.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8000대 가까운 카미카제 특공대가 고작 30여척의 수송함에 피해를 주고 산화했으니 엄청난 전력 낭비였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키히토 현 일왕조차 이 설명을 듣고 "그저 병력을 소모하는 일"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초등학생조차 이해할 수 없는 작전을 펴나갔던 것. 이런 엄청난 손실로 막상 미 공군이 도쿄를 공습하고 핵을 떨어트릴 때는 상공을 방어할 전투기가 없었다.

정작 병사들과 국민들에게는 끝까지 최후의 항전을 주장하며 '1억 총옥쇄'를 연호하던 군부 수장이란 인물들은 비겁하게도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의 안위는 끔찍하게도 챙겼다. 전쟁 통에서도 도조 히데키의 세 아들은 모두 후방에서 안전하게 근무했고 그나마 교수형을 당한 A급 전범들 외에 사면을 받은 전범들은 버젓이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지우고 정재계에서 극우인사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극우화 경향을 띄고 있는 현재 일본정부는 이 가미카제까지 미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일본이 소위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섬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려고 할 때 가미카제도 등재시키려고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미카제는 유네스코 일본위원회에서조차 등재가 거부됐다. 카미카제는 일본 우익 내에서조차 쉽게 용인되지 않는 문제임을 보여준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포토슬라이드

'중심잡기 힘드네'
라붐 '눈부신 각선미'
'복근을 가로지르는 X'
'멀리서도 시선강탈'
민송이, '노련한 포즈'
최성희 '원더우먼 변신'
이전 포토 다음 포토

★★★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