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빈섬 시간여행]'인간미사일' 시라소니는 왜, '동대문 알카포네' 이정재를 죽이려 했나

아시아경제 티잼 이상국 기자최종수정 2017.05.15 14:46 기사입력 2017.05.15 14:46
권총보다 빨랐다는 '5m 용수철 박치기'의 전설…배신자로 처단하려했던 이정재를 5.16이 교수형
5.16 직후, 1961년 5월 23일 종로. 이정재는 오랏줄에 묶인 채 정치깡패들의 선두에서 걷고 있었다.

그를 죽이려고 2년 동안 권총을 품고다니던 시라소니 이성순은 그날, 들끓던 살의(殺意)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이정재는 그 해 8월17일 사형선고를 받고 다음달 형장의 이슬이 된다.

sbs 드라마 '야인시대'(2002-2003)에서 시라소니로 열연한 조상구.
sbs 드라마 '야인시대'(2002-2003)에서 시라소니로 열연한 조상구.


시라소니는 누구던가. 신체 외에 다른 무기를 쓰지 않는 ‘낭만주먹 시대’의 1인자였고 장군의 아들 김두한이 ‘형님’이라 불렀던 사람이다. 일제 때 평북 신의주에서 태어난 그는 박치기에 관한 한 ‘인간 미사일’이었다.

5m 이상을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는 헤딩에 하얼빈의 폭력배는 얼굴 전체가 함몰됐고, 상하이 헌병대장은 사흘만에 깨어났다. 러시아대장이 당긴 권총보다 박치기가 더 빨랐다는 전설도 있다. 그는 또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일본군 무리를 제압하기 위해 칼 던지기 연습을 했다. 40m 앞에서 바둑판 크기의 표적을 놓고 던져서 한 개도 빗나간 게 없었다고 한다. 그는 왜 이정재에게 앙심을 품었던가.

'인간미사일'로 불렸던 전설적인 주먹 시라소니 이성순.
'인간미사일'로 불렸던 전설적인 주먹 시라소니 이성순.


이씨는 이천의 씨름꾼 출신이다. 전국대회에서 황소 10마리를 탈 만큼 힘이 좋았다. 당시 주먹들이 대개 무학(無學)이었던 것과는 달리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머리가 좋았다고 한다. 6.25때 피난지 부산에서 그는 텃세를 부리는 용가리패 10여명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지나가던 시라소니가 순식간에 깡패들을 제압해버리고 이정재를 구해준다. 이 인연으로 이씨는 그를 형님으로 모시기로 맹세한다.

서울에 온 이정재는 김두한 밑에서 일하다 독립해서 동대문 일대를 주름잡는다. ‘동대문 알카포네’로 불렸던 그에겐 라이벌 집단인 이북 출신 명동파의 식객으로 있는 시라소니가 버거워진다.

5.16 이후 사형 당한 '동대문 알카포네' 이정재.
5.16 이후 사형 당한 '동대문 알카포네' 이정재.


1953년 시라소니는 이북 상인들의 민원을 청탁하러 이정재에게로 간다. ‘아우’를 믿었기에 혈혈단신 맨몸이었다. 이씨의 사무실에는 도끼, 갈퀴, 절굿공이로 무장한 부하들이 수십명 잠복해 있었고, 좁은 공간인지라 시라소니는 힘을 쓰지도 못한 채 어육(魚肉)이 된다. 이후 그가 병원에 있을 때 이정재의 부하가 습격해 성한 왼쪽발을 다시 망가뜨렸다.

1년만에 퇴원한 시라소니는 복수심을 불태우며 사격 연습을 했다. 그러나 그가 죽이기 전에 권력이 먼저 이정재를 덮쳐버리는 바람에 분노의 총알을 쓸 기회를 잃었다.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시라소니는 종교 앞에 무릎을 꿇고 신앙인으로 살다 1983년 돌아갔다.

해방 이후 법질서가 뿌리내리지 못했던 시절, 그것을 대행하겠다고 나선 주먹들. 최근 인터넷 속에선 그 시절 주먹에 대한 동경과 숭배가 확산되는 느낌이다. 사회의 정상적인 시스템이 고장 나고, 억눌린 이들이 많아질 때, 법보다 주먹이 멋져 보인다고 했던가.




아시아경제 티잼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티잼 많이 본 기사

포토슬라이드

예지의 '파워 섹시'
현아 '살짝 앉았을 뿐인데…'
'눈길끄는 볼륨'
청하 '놀라운 비율'
'란제리 카우보이'
'특이한 가슴 노출'
이전 포토 다음 포토

★★★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