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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바퀴벌레를 위한 변명

아시아경제 티잼 이상국 기자최종수정 2017.05.19 04:01 기사입력 2017.05.18 08:45
[낱말의습격]바퀴 달린 말들은 가끔 유턴한다…홍준표-홍문종 막말전에 부쳐

한 몸이 살자 하였더니 물것 겨워 못 살겠구나./ 피 껍질 같은 작은 이, 보리알 같은 수퉁니, 굶주린 이, 막 알에서 깨어난 이, 작은 벼룩, 굵은 벼룩, 잔 벼룩, 왜(倭)벼룩, 뛰는 놈, 기는 놈에 비파 같은 빈대 새끼, 사령 같은 등에, 각다귀, 사마귀, 흰 바퀴벌레, 누런 바퀴벌레, 바구미, 고자리, 부리 뾰족한 모기, 다리 기다란 모기, 여윈 모기, 살찐 모기, 그리마, 뾰록이, 심한 당(唐)벼룩에 더 어려워라./ 그 중에 참다 못 견딜 손 오뉴월 복더위에 쉬파린가 하노라


사설시조에도 나오는 바퀴벌레. 그러고 보니 이 벌레는 외래종만 있는 것이 아니라 토종도 있다. 시조에 나오는 흰 바퀴와 누런 바퀴도 국내산 바퀴일 것이다. 한편 갑옷바퀴 혹은 귀신바퀴라고 부르는 토종바퀴는 산속에 사는데, 인터넷에 보니 식용으로 먹기도 하는 놀라운 장면이 나온다.

▶ 3억5천만년이나 살았다는 이 벌레


바퀴벌레는 그냥 바퀴라고도 부르는데, 이름 앞에 왜 '바퀴'가 붙어있는지 알기 어렵다. 쉽게 생각하면 자동차 바퀴와 같이 미끄러지듯 굴러가며 이동하는 모양을 따서 그렇게 지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 영남방언으로 수레 아래에 있는 바퀴를 '동테'라고도 하는데, 이 벌레도 '동테벌레'라고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나는 못 들어본 소리다. '강구'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말이다.

사실 바퀴와 모양이나 동작이 비슷하다는 것도 살짝 억지스럽다. 공처럼 둥글어지는 것도 아니고 길쭉한 몸을 지닌 바퀴의 어디가 자동차 아래에 둥근 휠이나 타이어와 닮았다는 말인가.

3억5천만년이나 살았던 벌레이니, 수레바퀴가 나오기 훨씬 오래전에 이 벌레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니 수레바퀴를 보고 벌레를 명명했을 가능성보다는 벌레를 보고 수레의 휠을 그렇게 불렀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 멕시코 저항가요 '라쿠카라차'도 바퀴벌레송

멕시코의 유명한 노래인 '라쿠카라차'는 바퀴벌레라는 뜻이다. 멕시코혁명 때 저항하는 국민들이 바퀴벌레처럼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노래한 곡이다. 이를테면 우리의 '임을 위한 행진곡'과 같은 기분의 노래다.

중국에선 장랑(樟螂)이나 다파(茶婆)로 불린다. 바퀴가 중국의 한자어와는 상관없는 순수한 우리말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어원을 더 짐작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도대체 두 글자 낱말의 틈새로 파고들 여지가 없어 바퀴, 바퀴 소리내서 읽다가 더 답답해지고 만다. 바퀴는 탈 것의 아래에 붙은 것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쳇바퀴나 동네 한 바퀴처럼, 둥글게 돌아가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둥근 딱정벌레나 물방게 따위는 바퀴벌레라 부르지 않는다.



▶ 바퀴벌레 공포의 100만배로 그들은 사람 공포를

둥글지도 않고 구르지도 않는 이 이상한 바퀴는, 인간에게 왜 그렇게 집요하고 지독한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사람에게 달려들어 물어뜯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침이 있어서 모기나 벌처럼 쏘는 것도 아니고, 독이 든 물을 쏴서 눈을 멀게 하는 것도 아니다. 특별히 공격적인 특징도 없고 그저 인기척만 나면 꽁지가 빠질듯 도망가느라 바쁜 이 벌레를, 인간은 마치 선험적인 적개심이라도 있는 양 달려가 밟고 때려 죽이기 일쑤다.

우리가 이 벌레를 보고 소름끼쳐 하는 것의 한 백만배 쯤 우릴 보고 이 친구들이 기겁할 것임에 틀림없다. 인기척이 있으면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떤 바퀴벌레도 인간을 공격해 살해했다는 뉴스를 못들은 걸 보면, 이 종족들과 인간들 사이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자유한국동 홍준표가 친박세력을 바퀴벌레처럼 슬금슬금 기어들어온다며 원색적으로 욕을 하자, 친박 쪽에선 낮술했수? 라며 받아치면서 입씨름이 벌어졌다. 이 싸움판을 보노라니 정말 요즘 어떤 정치의 소굴 속에선 비슷한 형상의 충들이 아노미상태에서 죽기살기로 서로 물어뜯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진짜 마음 약한, 바퀴벌레들이 몹시 놀랄 것이다.

▶ 바퀴벌레들도 이런 풍경은 처음 볼텐데...

때마침 읽은 시집 속에서 이성복은 이런 장면('화장실에서'란 시)을 보여준다. "정말, 큰 바퀴벌레 뒤에/엄청, 아주 엄청 작은 바퀴벌레가/기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본래 새끼들은 그렇게 아주 아주 작아서/다 자란 큰 것들을 부끄럽게 한다" 바퀴벌레 새끼도 귀여운가, 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도 모성이 있고 새끼들은 귀여울 게 아닌가.

인간들끼리 서로를 바퀴벌레라 지목하고 낮술 주정뱅이로 받아치는 부끄러움 없는 풍경은, 바퀴벌레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장면일 것이다. 물론 사설시조의 첫부분처럼 '한 몸이 살자 하였더니 물것 겨워 못 살겠구나'하는 홍준표의 기분이야 일견 알 것 같다. 하지만 이성복 식으로 표현하자면, 이 나라 욕설 벌레들은 그렇게 도량들이 아주아주 작아서 주변의 귀와 눈들을 도리어 부끄럽게 하는 것도 어김없는 사실이다. '바퀴'달린 말들은 가끔 유턴해 자기를 향해 돌진하기도 한다.






아시아경제 티잼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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