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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요일에 보는 경제사]자동차는 어떻게 마차를 대체하게 됐을까?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최종수정 2017.05.19 10:49 기사입력 2017.05.19 10:49
까다로운 말먹이, 비싼 유지비로 운송수단 경쟁에서 밀려난 마차
적기조례에 따라 기수의 선도에 의해 움직이는 자동차 모습(사진= theoddmentemporium.tumblr.com)
적기조례에 따라 기수의 선도에 의해 움직이는 자동차 모습(사진= theoddmentemporium.tumblr.com)

[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자동차에는 기수 한명이 반드시 타야하며 기수는 붉은 깃발을 흔들며 자동차를 선도해야한다"

"말과 마주친 자동차는 정지해야한다"

"말을 놀라게 하는 연기나 증기를 내뿜지 말 것"

이것은 1865년 영국에서 제정된, 세계 최초의 자동차 규제법인 적기조례(赤旗條例)에 나오는 규정 중 일부다. 이외에도 자동차 속도를 시가지에서 시속 3km로 제한하는 조항까지 자동차가 아예 도로 위에서 달리지 말도록 규제한 조항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코미디에 가까운 이 조항들은 19세기 당시 벌어진 마차와 자동차 업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과 로비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운송수단 분야를 장악하기 위한 말과 자동차의 전쟁은 19세기부터 1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약 100년 가까이 진행됐다. 적기조례가 제정될 당시까지는 빅토리아 여왕의 지지를 등에 업은 마차업자들이 승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차는 자동차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22명이 탑승할 수 있었던 마차버스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22명이 탑승할 수 있었던 마차버스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마차가 자동차에 의해 밀려난 가장 큰 요인은 사실 경제성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말은 가격도 엄청나고 구하기도 어려웠다. 더구나 말을 먹일 건초를 만들려면 넓은 목초지가 필요했다. 주요 목초지와 농토를 수용해 철도, 공장, 온갖 새로운 시설을 높이는 시대에 말은 점차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마차가 운송의 대부분을 담당하던 시대에는 원거리 육상무역도 사실 한계가 있었다. 상업 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마차들은 19세기까지 마차로 4일거리 이내만을 주로 이동할 수 있었고, 그보다 먼 거리까지 운송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짐마차 한 대로 식량이나 운송품을 제외하고 실을 수 있는 말먹이는 보통 8일치 정도였기 때문에 돌아오는 거리까지 고려해 4일 거리에 떨어진 정도까지만 이동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 다음 마을에서 말먹이를 구할 수 있다면 더 이동할 수 있지만 좋은 말먹이는 어디서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먹이에 민감한 말은 잘못 먹으면 병들거나 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원래 먹던 먹이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역참에서 말을 빌리기 위해 보여주던 마패(사진=위키피디아)
역참에서 말을 빌리기 위해 보여주던 마패(사진=위키피디아)

이러한 한계를 막기 위해 몽골제국 시대부터 생긴 것이 역참(驛站)제도였다. 수도에서 매 30km 지점마다 말을 갈아타거나 쉴 수 있는 역참을 만드는 제도였는데 이 역시 유지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주로 중요 문서를 전달하는 파발이나 사신들이 이용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민간인들이나 상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연기관 자동차가 나오기 전까지 운송은 대부분 마차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자동차와 관련한 대부분의 단어가 사실 마차에서 온 말이다. 버스, 택시, 컨버터블, 세단 등은 모두 마차를 구분할 때 쓰던 말이다. 심지어 택시미터기도 원래 마차용으로 제작됐고 자동차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미터기를 장착한 마차도 돌아다녔다. 19세기 말까지는 마차와 자동차의 경쟁은 지속됐고 마차업계의 영향력으로 자동차가 세계를 지배할 날은 다음 세기 말이나 돼서야 가능할 것이라 예상됐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 유럽이 뛰어든 이 전쟁에서 말이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가 죽은 것. 당시 전쟁터에서 말은 여전히 중요한 전투용 자원이자 운송수단으로 활용됐고 무려 900만마리의 말이 사망했다. 1차대전 전사자 수가 1000만명 정도로 추산되니 사람만큼 말도 많이 죽은 것이다.

1차대전에 참전한 기병대 모습(사진=영화 '워호스' 캡쳐)
1차대전에 참전한 기병대 모습(사진=영화 '워호스' 캡쳐)

당시 유럽 주요국들은 전쟁을 위해 전투 기마병용으로, 운송용으로 말이란 말은 대부분 전선으로 보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전장은 예전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때의 전투처럼 기마병이 적진을 휘젓고 다닐 수 있는 전투환경이 아니었다. 기관총, 대인지뢰, 철조망과 참호로 구성된 1차대전의 전장은 수많은 기병대를 글자그대로 학살시켰으며 주로 귀족출신 장교들이 지휘하던 기병대의 기수와 말은 구 시대의 유물처럼 사라져갔다.

결국 1차 대전 전후로 말의 빈자리를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채워나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 말처럼 먹이가 까다롭지도 않고 고장이 난다고 죽지도 않는 자동차는 말에 비해 달릴 수 있는 노면환경을 가린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이후 20년 뒤 벌어진 2차 세계대전은 전차와 수송트럭, 오토바이 등 내연기관으로 대체된 기계 기병대들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마차는 이제 관광지나 해외 왕실의 기념행사 때나 볼 수 있는 과거의 영광이 된 것이다.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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