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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요일에 보는 경제사]영토도 매각대상?…미국을 키운 영토 매매의 경제사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최종수정 2017.06.30 16:03 기사입력 2017.06.30 16:03
미국 중부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던 루이지애나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미국 중부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던 루이지애나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1776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선언을 했던 미국 동부 13개주의 영토는 지금 미국 영토와 비교하면 아주 작은 규모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북미대륙 대서양 연안에 연이어 늘어선 연방국가 모임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리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당시 북미대륙은 각종 유럽국가들이 들어와 식민지를 세워놓은 상황이었고 신생 미국은 북으로는 영국령 캐나다, 서부로는 프랑스령 루이지애나에 둘러싸여있었다. 특히 서부 루이지애나는 당시 미국의 교역과 농업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미시시피강을 대다수 끼고 있었다. 미국 남부 농업 교역에는 미시시피강 수운이 필수적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프랑스측에 막대한 통행세를 내야만 했다.

당시 루이지애나는 미국 중부 전반에 걸친 거대한 영역이었다. 프랑스의 태양왕이라 불리는 루이14세 때 식민지로 편입된 지역이라 루이지애나란 이름이 붙었다. 프랑스의 도시 오를레앙을 따서 붙인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미시시피강 서부의 광활한 영역을 프랑스가 지배하고 있었다.

루이지애나 매각 후 주도인 뉴올리언스에 게양되는 미국 성조기를 그린 그림(사진=위키피디아)
루이지애나 매각 후 주도인 뉴올리언스에 게양되는 미국 성조기를 그린 그림(사진=위키피디아)

이 지역의 운명이 달라진 것은 바로 프랑스 정부가 이 거대한 루이지애나를 1803년, 미국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미시시피강 서안의 교역권 협상을 위해 외교단을 파견했는데 당시 프랑스의 지배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루이지애나를 아예 팔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영토 매각은 동양권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문화다. 국토는 국가의 근간이라는 믿음이 강하고 식민지 체제가 따로 없던 동양국가들은 영토를 돈을 주고 매각하거나 매매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16세기 이후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전역에 식민체제를 만든 서구 국가들은 본국 영토를 매매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식민지에 대한 매각이나 영토구입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전쟁의 결과로 협상을 통해 식민지를 교환하는 경우도 잦았다.

나폴레옹은 1500만달러에 이 신생 미국 13주 영토보다도 큰 땅을 미국에 팔았다. 1㎢당 단돈 7달러 정도에 루이지애나를 사들인 미국은 순식간에 영토가 2배로 불어났다. 신생 미국이 강대해질 수 있던 영역기반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현재는 이 영토 매각에 대해 나폴레옹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지적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은 철저히 현재 기준에서 바라본 것이고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프랑스가 결코 손해보는 장사만은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계속 치르고 있어 북미 식민지 관리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북미 식민지로 들어가는 관문이던 아이티에서 혁명이 발생했고 영국 해군과의 전투를 대비해 병력을 배치하기도 부담스러웠다.

1803년,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매각한 나폴레옹 초상화. 매각 이듬해인 1804년, 나폴레옹은 유럽 전선에서 대승을 거두며 황제에 즉위했다.(사진=위키피디아)
1803년,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매각한 나폴레옹 초상화. 매각 이듬해인 1804년, 나폴레옹은 유럽 전선에서 대승을 거두며 황제에 즉위했다.(사진=위키피디아)

또한 당시 루이지애나는 무역항인 뉴올리언스를 제외하면 별 이익도 나오지 않는 황무지였다. 탐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개발을 하려면 앞으로도 막대한 투자가 필요했다. 영국과의 전쟁이 지속되면서 영국에 빼앗길 가능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미국에 매각하는 것이 이득일 것이란 계산이 섰던 것이다.

이러한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실행된 루이지애나 매각은 미국의 운명을 뒤바꿨다. 미국은 북미대륙 중부 일대를 장악하면서 영국 식민지와 서부에 광활한 식민지를 건설한 스페인 세력과 맞설 힘을 갖게 됐다. 또한 미국의 서부개발과 연이은 태평양진출을 가능케 하면서 오늘날의 광대한 미국의 영토를 완성하는 초석을 이루게 됐다.

그래서 이 영토 매매계약은 1867년, 러시아로부터 720만달러에 알레스카를 매매한 영토 매매 계약과 함께 미국에 천운을 가져다 준 최고의 매매계약으로 손꼽힌다. 이 두 영토 매매가 성사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의 역사는 상당히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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