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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요일에 보는 경제사]피라미드 건축에 동원된 인원은 몇 명일까?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최종수정 2017.07.14 11:24 기사입력 2017.07.14 11:24
나무로 만든 크레인 등 활용하면 4000~1만명으로 7년이면 건설가능
(사진=두산백과)
(사진=두산백과)

이집트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피라미드는 흔히 '초고대문명설'이라 불리는 낭설에 시달리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머나먼 초고대시대,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들이 최첨단 문명을 이용해 외계 중장비를 동원해서 지었다는 것. 헐리우드 영화인 '스타게이트(Stargate)'를 비롯해 각종 SF영화에서도 피라미드는 외계인들의 기지로 잘 나온다.

이것은 2.5톤(t) 무게의 잘 정돈된 사각형 돌을 300만개나 쌓아올려 높이 100미터가 넘는 초대형 건축물을 4000년 전에 지을만한 기술이 없었을 것이란 현대인들의 기술적 오만이 녹아들어가 있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아시아 및 아프리카 대륙 등 비서구권에 대한 인종적, 문화적 열등의 굴레를 씌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도 한몫했다.

영화 스타게이트에서 외계인 우주선으로 묘사되는 피라미드(사진=영화 '스타게이트' 장면 캡쳐)
영화 스타게이트에서 외계인 우주선으로 묘사되는 피라미드(사진=영화 '스타게이트' 장면 캡쳐)

초고대문명설과 같은 낭설에서 벗어나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피라미드 건축은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무엇보다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됐는지, 그걸 부양할 경제력을 당시 고대 이집트 사회가 가지고 있었는지를 놓고 갖가지 학설들이 충돌했다. 아직도 피라미드 건설을 놓고 명확한 학설은 나오지 않고 있다.

20세기까지 이집트 국내는 물론 각국 역사교과서를 비롯해 일반 상식처럼 알려진 것은 피라미드 건설에 최소 연인원 10만명이 투입됐으며 건축기간은 최소 30년 정도 걸렸을 것이란 학설이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시대에 이집트를 방문해 피라미드를 봤던 것으로 알려진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노예 20만명이 동원됐을 것이란 기록을 남기면서 점차 굳어지기 시작한 믿음이다. 또한 현대인이 상상하는 고대의 기술력과 고대 노예제 사회에 대한 편견이 크게 작용한 이미지였으며 피라미드 돌을 끌며 채찍질을 맞는 노예들의 모습은 전 세계 학생들에게 각인돼 있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결과 이러한 편견이 점차 깨지고 있다. 채석장에서 공사장까지 돌의 운반은 나일강 범람시기를 활용하면 하루 수십만개씩 돌을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공사장에 온 2.5톤가량의 돌을 내부 경사로를 만들고 끌어올리면 10명 정도 인원이 충분히 쌓아올릴 수 있었다.

복원한 고대 거중기 모습(사진=히스토리채널)
복원한 고대 거중기 모습(사진=히스토리채널)

또한 최근에는 고대 사용됐던 나무로 만든 거중기, 즉 고대 크레인이 활용됐을 것이란 설도 나왔다. 이 거중기를 활용하면 200톤 가량의 돌도 들어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기중기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활발히 활용됐었으며 이집트에서도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여러 새로운 학설들을 합쳐보면 피라미드 1개를 건축하는데 필요한 인력은 대략 4000명에서 1만명 순으로 줄어들며 공사기간은 약 7년~10년 정도로 줄어든다.

이런 피라미드 건축 기술력 또한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피라미드의 대표로 알려진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는 기원전 26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때는 이미 이집트 고왕국 중 4번째 왕조가 시작됐으며 이집트 문명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기원전 33세기보다 700년이나 뒤의 일이었다. 처음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졌던 피라미드는 점차 오늘날의 삼각형 모양의 사각뿔 디자인을 갖출 때까지 수백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복원된 고대 거중기의 동력전달부분(사진=히스토리채널)
복원된 고대 거중기의 동력전달부분(사진=히스토리채널)

또한 제작에 동원된 인력들도 채찍 맞던 노예들이 아니라 대부분 농민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피라미드 건축시기는 농민들이 어쩔 수 없이 놀아야만 되는 나일강의 범람시기로 이 시기 식량마련이 쉽지 않은 농민들이 고용돼 피라미드 건축현장에서 일했다. 몇몇 피라미드에 새겨진 낙서들 중에는 흥미로운 기록들이 나왔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일당과 생활상, 감독관과 싸워 며칠동안 출근하지 않은 이야기나 부부싸움 이야기, 노동자들의 파업 등이 적혀있어 작업현장이 노예 노동의 현장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피라미드 건축 자체가 농한기 때 일종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이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 왕조가 잦은 외세의 침탈로 인해 멸망하고 기원전 4세기 경,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원정 이후에는 피라미드 건축 기술이 대부분 실전됐다. 이후 로마제국 시대로 넘어가면서부터 피라미드 관광코스는 활발하게 진행됐는데 서기 1세기경 로마시대 사람들 입장에서도 2600년전 건물로 알려진 피라미드는 신비의 대상이었다. 고대인이었던 그들도 그들보다 훨씬 고대인들인 이집트인들이 어떻게 이런걸 만들었는지 신기했으며 고대 석조 건축기술 자체가 실전된 서양의 중세시대 이후에는 아예 신화가 됐다. 오해가 오해를 키우면서 수천년이 지난 결과, 결국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설까지 나오게 된 셈이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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