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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요일에 보는 경제사]조선백자는 어떻게 고려청자를 밀어냈을까?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최종수정 2017.08.04 14:26 기사입력 2017.08.04 14:26
국보 제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 모습(사진=위키피디아)
국보 제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 모습(사진=위키피디아)

고려시대 대표적인 유물이라 하면 단연 '청자'를 꼽는다. 송나라의 청자 기술을 모방해 1000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고려청자는 12세기부터 독자적 영역을 마련했고 송나라 청자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으로 이미 당대에 주요 수출품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청자가 왜 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 백자에게 밀려났던 것일까? 보통 역사교과서에 나온 설명으로는 유교가 국시인 조선시대에는 청렴과 개결을 중시 여겨 선비의 기풍을 나타나내는 백자를 청자보다 귀히 여겼다고 나온다. 청자의 화려한 문양보다는 백자의 고고함이 더욱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것.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사실 설명이 매우 부족하다. 청자가 14세기부터 급격히 쇠퇴한 것은 단순히 이런 국내적 요인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자는 고려의 주요 수출품으로 고려 말까지 중국으로 대량 수출됐다.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무역선에서 출토된 청자들만 봐도 당시 고려청자가 중국에서 상당한 수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당시 수요가 제한적이었던 고려 내수용보다는 수출용으로 훨씬 잘나갔던 제품이었다.

조선백자 모습(사진=아시아경제DB)
조선백자 모습(사진=아시아경제DB)

실제로 청자가 급격히 쇠퇴한데 영향을 끼친 것은 역시 국내 기풍의 변화보다는 대륙의 사정에 있었다. 1276년, 남송이 몽골제국에게 멸망되면서 중국 전체를 몽골이 장악했고, 몽골인들은 1368년, 명나라에 북경을 내주기 전까지 100여년간 중국 전역을 통치했다. 이러면서 13세기 말부터 국제 도자기 시장은 큰 변화를 맞이한다.

몽골인들을 비롯해 유목민들은 청색보다는 태양의 색이라 존귀하게 여긴 흰색을 최상으로 쳤으며 이에따라 백자 수요가 점차 늘어났다. 이뿐만 아니라 몽골이 유라시아 전역을 통일해 실크로드 교역로가 크게 발전하면서 중동 지역의 도자기 수요도 점차 크게 늘어났는데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청자보다 백자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주요 소비지에서의 백자 수요 증가는 백자 생산량에 영향을 끼쳤다.

또한 백자 기술도 발전했다. 사실 백자는 초창기 등장했을 때는 청자보다 만들기가 까다로웠다. 처음엔 완벽하게 새하얀 백자를 만들만한 기술이 부족해 백자가 거의 회색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흔히 '본 차이나'라 알려진 백자 제조 기술이 몽골제국시기 중국에서 크게 발전하면서 백자의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됐다. 우리나라에도 고려 말기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백자기술은 조선 중기에 이르러 완성됐다.

국보 제219호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사진=위키피디아)
국보 제219호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사진=위키피디아)

이후 문양을 넣지 않은 새하얀 백자는 청화백자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18세기 이후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15세기부터 본격 생산된 청화백자는 처음엔 이란산 코발트 안료만 사용해 대량생산이 힘들었다. 코발트 안료가 멀리서 오다보니 동아시아 내에서도 워낙 귀한 재료로 손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18세기부터 서양의 양청(洋靑) 안료가 대량 수입되면서 청화백자는 가격이 내려갔고 중국과 조선,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도자기 기술을 훔쳐간 일본 삼국에서 대량으로 생산해 유럽 각국으로 팔려나갔다.

시장상황이 이러다보니 청자는 점점 시장을 잃기 시작하여 17세기 이후에는 거의 자취를 감춰버렸다. 청자 기술 자체도 실전됐으며 조선조 말엽부터는 청자 존재들도 잘 몰랐다. 청자를 다시 유명하게 만든 것은 조선을 침략한 일본인들이었다. 구한말부터 고려시대 무덤 도굴에 혈안이었던 일제는 대규모로 청자를 도굴, 일본에 반입했다.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고려 청자구룡정병(사진=위키피디아)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고려 청자구룡정병(사진=위키피디아)

특히 청자 수집의 가장 큰 손으로 알려져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자신의 청자 수집품 중 일부를 덕수궁 박물관에 전시해놓고 자랑하기도 했다. 고종황제가 이를 보고 어디서 난 것이냐 묻자 이토는 조선의 것이라 답했고, 고종이 역으로 이런건 우리나라에 없다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청자는 잊어버린 역사적 유물이 됐었다.

오늘날에는 동아시아 각국에서 옛 고려청자 유물들이 나오면서 고려청자의 위상이 재발견되고 있는 상황이다. 당대 청자 종주국인 중국 뿐만 아니라 베트남, 필리핀 등지는 물론 티베트에서도 출토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명실공히 인삼과 함께 한국을 국제시장에 알렸던 중요한 수출품이었던 셈이다.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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