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옛날 군복은 왜 그리도 화려했을까?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최종수정 2017.08.08 15:53 기사입력 2017.08.08 14:42
미국 독립전쟁 이후 2차대전 이전까지 미국 군복 변화 모습(사진=위키피디아)
미국 독립전쟁 이후 2차대전 이전까지 미국 군복 변화 모습(사진=위키피디아)

보통 18세기나 19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군인들의 복장이다. 화려한 단색으로 구성된 제복은 각 나라마다 대표색을 입혀 어디서나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특징이다. 길이가 긴 모자에 위에는 보통 깃털을 달고 화려한 견장까지 마치 파티장이라도 갈 기세의 힘이 들어간 복장이다.

흔히 은폐·엄폐를 목적으로 위장색 도료를 칠하는 현대 군복과는 완전 정반대되는 옷이다 보니 현대인들 입장에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복장이기도 하다. 이런 옷을 입고 야전에 서는 것은 그야말로 날 좀 과녁으로 맞춰 쏴달라는 이야기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무기체계가 현대와 아무리 차이가 난다고 해도 결국 야전에서의 개인화기는 총기를 들고 있던 시대에, 어째서 이렇게 화려한 복장으로 전쟁터에 나갔던 것일까?

19세기 중엽까지 전장에서 주로 쓰였던 플린트락 머스킷(사진=위키피디아)
19세기 중엽까지 전장에서 주로 쓰였던 플린트락 머스킷(사진=위키피디아)

이 근대 초기 군복의 아이러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시대까지 주로 쓰던 총기인 플린트락 머스킷(Flintlock musket), 즉 수발식(燧發式) 총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수발식 총기는 이보다 이전에 사용하던 화승총에 비해 격발방식이 간편하게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사용하기 불편한 총이었다. 부싯돌의 마찰을 통해 점화약에 불을 붙여 격발하는 플린트락 머스킷의 가장 큰 단점은 쏘고 나서 엄청난 연기에 휩싸인다는 점이었다.

이때까지 소총에 쓰이던 흑색화약은 현재 총탄에 쓰이는 무연화약과 달리 폭발시 연기가 매우 심했다. 병사들이 일렬로 도열해 일제사격을 한번 하고 나면 화약연기가 자욱해지고 몇 발 쏘면 곧 사방이 검은 화약연기로 뒤덮여 피아 식별도 어려워질 정도였다. 전투가 격렬해지고 나면 온몸이 시커멓게 물들 정도였기 때문에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 강한 원색의 군복이었다.

또한 당시까지 머스킷은 현대처럼 은폐한 뒤 원거리 조준사격이 가능할 정도의 성능을 보유하지 못한 구식무기였다. 라이플 소총처럼 총신 내부에 강선이 들어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거리도 짧을 뿐 아니라 병사들이 일렬로 서서 단거리에 거대한 탄착군을 형성해 쏘지 않으면 총알이 이리저리 사방으로 튀기 때문에 조준사격이 거의 의미가 없는 총기였다. 그래서 고대부터 내려오던 밀집보병 전략이 계속 활용됐고 이를 위해서도 화려한 군복은 반드시 필요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 레드코트 복장을 재현한 모습(사진=위키피디아)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 레드코트 복장을 재현한 모습(사진=위키피디아)

그 이유는 군대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당시 상당수 남자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본 화려한 육군 군복과 군도, 총기류에 일종의 판타지를 느꼈다고 한다. 자비로 그처럼 화려한 옷을 입기 어려운 형편의 서민들에게 강력한 입대 동기 중 하나로 작용했던 것. 훗날 나치 친위대 군복을 독일 명품 패션 브랜드 디자이너인 휴고보스(hugoboss)가 제작했던 것도 이러한 남성들의 화려한 군복에 대한 애착을 반영한 것이다.

군복의 색깔에는 전통적인 국가 대표색, 왕실 색깔을 집어넣어 역시 사기 진작에 이용했다. 영국의 붉은색 군복, 즉 '레드코트(Redcoat)'는 아예 육군의 별칭처럼 쓰이게 됐고, 프랑스 대혁명 이전에 부르봉 왕가의 지배를 받던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는 부르봉 왕가의 문장인 백합의 흰색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유럽의 육군은 18세기 중엽 이후로는 대체로 각 국가마다 통일된 색깔의 군복이 착용됐다.

19세기 영국 수병이 입던 세일러복(사진=위키피디아)
19세기 영국 수병이 입던 세일러복(사진=위키피디아)

이에 비해 해군은 좀 입장이 달랐는데, 해군은 19세기 중엽까지 소수 정부 병력과 갑자기 징집한 다수 민간함선이 전시에만 연합함대를 구성해 운용하다 전후 다시 소집해제하는 경우가 많아 복장 통일의 필요성이 늦게 제기됐다. 19세기 중엽에 들어서야 수병들의 군복이 세일러복 형태로 통일되기 시작했으며 이 세일러복 디자인은 19세기 말부터 전 세계 학생들의 교복으로 넘어가게 됐다.

그러나 이 화려했던 군복의 전성기를 끝장낸 것은 1차 세계대전이었다. 현대적인 연발소총, 기관총 등 개인화기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자 예전처럼 화려 찬란한 옷을 입고 밀집대형 형태로 서있다간 그대로 떼죽음을 당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1차 대전 전후로 '전쟁에선 군복 멋있는 쪽이 진다(The side with the fanciest uniforms loses)'는 속담까지 생겨나면서 군복은 이제 최대한 눈에 덜 띄는 어두운 색, 보호색을 띈 전투복으로 바뀐다. 이전의 화려했던 군복들은 모두 '예복'이란 형태로 남아 특수한 행사 때만 입는 옷으로 변해 전장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티잼 많이 본 기사

포토슬라이드

예지의 '파워 섹시'
현아 '살짝 앉았을 뿐인데…'
'눈길끄는 볼륨'
청하 '놀라운 비율'
'란제리 카우보이'
'특이한 가슴 노출'
이전 포토 다음 포토

★★★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