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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핵의 역사]①원폭 '피해국'이라는 日, 1945년 한반도서 핵실험 했었다?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최종수정 2017.08.10 11:35 기사입력 2017.08.10 11:20
패망 직전인 8월12일, 흥남 앞바다에서 원폭과 비슷한 폭발 있었다고 추정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후 발생한 버섯구름 모습(사진=위키피디아)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후 발생한 버섯구름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지난 6일과 9일, 일본에서는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 72주년 추도행사가 열렸다. 태평양전쟁 전범국인 일본은 자신들의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아도 이 추도행사는 항상 거대한 규모로 개최한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게 원자폭탄이 투하됐던, 원폭 피해국이란 타이틀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정작 1945년 패망 직전까지 일제는 미국, 소련, 독일 등 핵개발에 나섰던 다른 국가들처럼 역시 핵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심지어 한반도 내에서 핵실험까지 했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언제나 원폭피해국임을 강조하며 비핵화를 운운하면서 일각에서는 핵무장을 외치는 양면성은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지는 기만술이었던 셈이다.

일본 지지통신(時事通信)이 지난 1999년 8월 보도한 내용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의 기밀문서 중 1945년 8월12일, 함경남도 흥남 앞바다에서 원폭과 비슷한 폭발이 있었다는 보고가 있었으나 진상을 확실히 파악하진 못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 범죄조사대원인 데이비드 스넬이란 인물이 일본군 장교에게 입수한 정보에는 "일본군이 함경남도 흥남 앞바다 30km 지점에서 원폭실험을 해서 버섯모양의 거대한 구름이 치솟았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흥남에 위치했던 조선질소비료공장 일대 전경. 전시 대규모 군수물자 생산기지로 활용됐다.(사진=위키피디아)
일제강점기 흥남에 위치했던 조선질소비료공장 일대 전경. 전시 대규모 군수물자 생산기지로 활용됐다.(사진=위키피디아)

당시 흥남에는 아시아 최대 질소비료공장이 있었으며 이런 화학공장들은 전시에 화약제조로 사용되던 군수공장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일본의 핵개발 중심지라는 의혹은 이전부터 받고 있었다. 일본 본토가 1945년 초부터 미군의 공습으로 전력공급이 원활치 않자 전력과 우라늄 공급이 용이하고 미군 공습 범위에도 벗어나있던 북한 흥남지역을 핵개발 거점으로 삼았다는 것. 일제 패망 후 이 지역에 소련군이 진주했을 당시, 이 핵개발 자료들이 소련 측에 넘어갔을 것이란 설도 있다.

이후 1947년 주한 미군 사령부 방첩부대의 보고에서도 "일본군이 북한의 동해안에 띄운 선박에서 폭파를 동반한 실험을 실시해 원폭과 비슷한 폭발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의혹들이 나오면서 일본이 단순한 원폭 피해국이 아닌 핵 개발국 중 일부였다는 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를 비롯해 학계에서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며 원폭 피해국 이미지만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1940년대 일제의 원폭개발 프로젝트를 이끈 것으로 알려진 니시나 요시오(仁科 芳雄) 박사 모습(사진=위키피디아)
1940년대 일제의 원폭개발 프로젝트를 이끈 것으로 알려진 니시나 요시오(仁科 芳雄) 박사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일본이 실제 핵개발에 나섰다는 정황은 한반도 핵실험설 외에도 일본 육군이 이화학연구소를 통해 진행했던 원폭 개발 프로젝트인 '니고연구(二號硏究)'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니고연구란 이름은 당시 이 프로젝트를 이끌던 일본 물리학자, '니시나 요시오(仁科 芳雄)' 박사 이름의 첫글자인 '니'를 따서 붙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니시나 박사는 일본 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로 당시 일본 최초로 원자핵의 인공파괴에 쓰이는 사이클로트론을 완성했던 인물이었다.

1940년부터 시작된 니고연구는 핵분열 실험 및 원폭개발을 위한 기초이론 조사와 일본 내 우라늄 광석 매장 확인 등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약 100여명의 일본 내 최고 과학자들이 투입됐지만 이미 10만명 이상이 투입된 미국의 맨하탄 프로젝트와 비교하면 규모가 훨씬 작았다. 전후 일본이 완전 항복한 뒤, 일본에 주둔했던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에서도 일본의 핵기술은 미국에 견주기에 훨씬 부족하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한다.

1917년 일본의 각종 군사과학 연구를 담당했던 이화학연구소 모습(사진=위키피디아)
1917년 일본의 각종 군사과학 연구를 담당했던 이화학연구소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이런 정황을 미뤄봤을 때, 일본은 단순한 원폭 피해국이 아니라 원폭 개발경쟁에 뛰어들었던 나라이며 일본이 만약 먼저 원폭을 개발했다면 이를 전쟁에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매년 열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추도식에서 일본이 주장하는 '피해국'이란 주장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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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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