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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핵무기]④북한이 핵보유 모델로 삼은 인도·파키스탄 핵 개발 역사

아시아경제 티잼 김희윤 기자최종수정 2017.08.11 04:04 기사입력 2017.08.10 11:23
비폭력주의 등지고 힘의 논리로 핵개발 나선 인도, 종교적 반목과 핵대응 위해 뛰어든 파키스탄
2004년 1월 6일 인도 공화국의 날 퍼레이드에 등장한 아그니-II 미사일 모습. 사진 = wikimedia
2004년 1월 6일 인도 공화국의 날 퍼레이드에 등장한 아그니-II 미사일 모습. 사진 = wikimedia

8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금껏 전 세계가 본 적 없는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 발언으로 북한과 미국을 둘러싼 핵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있다.

같은 날 워싱턴포스트(WP)는 미 국방정보국(DIA)보고서를 인용, “미 정보 당국이 지난달 28일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북한이 핵보유국 직전 단계에 진입했다는 해석이다.

태영호 전 북한공사는 지난해 12월 24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내년(2017년) 당 대회에서 파키스탄과 인도식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게 김정은의 방침이다. 이를 인정받은 후 국제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것”이라고 북한의 핵전략을 밝힌 바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인정하는 핵무기 보유국은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5개국이지만 대표적인 비공식 핵무기 보유국으로 지목되는 국가로는 인도, 파키스탄이 있다. 이들은 어떻게 핵무기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핵탄두 탑재 가능 ICBM 시험발사에 성공한 인도는 사실상 국제사회의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사진은 인도 최초의 ICBM 아그니 5의 발사 모습. 사진 = DRDO
핵탄두 탑재 가능 ICBM 시험발사에 성공한 인도는 사실상 국제사회의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사진은 인도 최초의 ICBM 아그니 5의 발사 모습. 사진 = DRDO

◆인도, 국제적 반핵 운동 주도국에서 핵 개발국으로 = 인도는 영국에서 독립한 1947년 국제사회에 절대로 핵을 개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주의’에 입각한 정치적 노선을 충실히 따라가며 1954년 미국의 태평양 마셜군도 핵실험 당시 세계 여론의 선두에서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도 인도였다. 당시 인도 초대 총리 네루는 국제적 반핵 운동 지도자로 손꼽혔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다른 데 있었다.

1962년 인도는 중국과의 국경분쟁에서 처참한 패배를 맞았다. 힘이 없으면 인도의 자존심과 같은 비동맹 자주노선은 지켜질 수 없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네루는 이후 핵 개발 연구에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국립대학에 원자력 학과를 개설하고, 인재는 외국 유학을 보내 원자력 전문가로 양성했다. 네루가 사망한 뒤로도 이어진 인도의 핵 개발은 1974년 인도 라자스탄 사막에서의 첫 실험으로 정점을 맞는 동시에 서방국가에 인도가 핵보유국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아시아에서 중국이 독점해온 핵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2004년 3월 최초로 시험발사에 성공한 파키스탄 핵미사일 샤힌 2호의 모습. 사진 = pakistanarmy
2004년 3월 최초로 시험발사에 성공한 파키스탄 핵미사일 샤힌 2호의 모습. 사진 = pakistanarmy

◆파키스탄, 인도의 핵 개발이 계기 = 파키스탄 핵 개발은 인도의 핵 보유를 계기로 이뤄졌다. 1965년 인도, 중국과의 접경지대인 카슈미르에서 인도군에 패한 파키스탄은 1971년 집권한 줄피카르 알리 부토 대통령 주도로 핵 개발에 착수한다. 하지만 자체기술과 인력 부재로 난항을 겪는 사이 1972년 방글라데시 전쟁이 발발했고, 또 한 번 인도에 대패한 파키스탄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핵 개발에 국가적 사활을 걸고 나섰다.

다국적 원자력 기업 연구원으로 있던 압둘 카디르 칸 박사를 영입해 서방의 우라늄 농축 기술을 빼내는데 성공한 파키스탄은 유럽으로부터 우라늄 농축 기술과 장비를 들여오는 한편 중국으로부터 원자폭탄 설계를 수입해 본격적 핵 개발 성과룰 올렸다. 이를 면밀히 주시하던 미국은 1976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를 파키스탄으로 보내 직접적 핵 개발 중단 메시지를 보냈고 핵 개발을 주도한 부토 대통령은 이듬해 군사 쿠데타로 실각,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의 핵 개발은 계속돼 1998년 마침내 첫 핵실험에 성공하며 핵무기 보유국에 이름을 올렸다.

사진 =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사진 =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에 핵 기술 제공한 파키스탄 = 현재 북한 핵 개발 기술의 기초는 앞서 언급한 파키스탄 ‘핵 개발의 아버지’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협조를 통해 다져졌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1980년대 말 북한에 핵무기 제조 필수 기술인 원심분리기 설계도와 완제품을 제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칸 박사는 1999년 북한에 방문, 직접 탄도 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소형화 핵탄두를 목격했다고 서방에 공개한 첫 외국인이다. 그리고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에 성공하며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다.

북한의 연이은 핵 도발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으로 연일 한반도를 둘러싼 핵전쟁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 위험도로만 놓고 보면 인도와 파키스탄 분쟁이야말로 전 세계에 핵 재앙이 될 일촉즉발의 화약고 그 자체다. 냉전시대 첨예한 이념대립을 바탕으로 핵균형을 이룬 미국과 소련의 갈등과 달리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의 배경엔 뿌리 깊은 종교적 적대감이 깔려있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소장인 정치과학자 스콧 세이건 교수는 “인도-파키스탄 핵전쟁 위험이 현재 미국과 북한 간 대립 위험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김정은과의 대화는 위험하고 불확실하지만, 파키스탄의 경우 미국의 영향력이 훨씬 더 제한적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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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티잼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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