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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의 삶]②우리는 언제부터 고시원에서 살았을까

아시아경제 티잼 김철현 기자최종수정 2017.08.11 15:21 기사입력 2017.08.11 15:18
주거와 숙박의 경계에 선 고시원의 역사

고시원은 말 그대로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시설로 출발했다. 초기의 고시원엔 공부를 위한 책상만 있었고 누우면 몸의 일부를 책상 밑으로 구겨 넣어야 할 정도로 좁았다. 하지만 공부를 위한 최소한의 시설만 있기에 가격은 저렴했고, 수험생이 아니더라도 고시원을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었다. 과거 쪽방이나 여인숙의 '월방'에 살던 도시 빈민들은 이젠 고시원에 둥지를 튼다. 고시 합격의 꿈이 영글어 가던 한 평 남짓한 공간은 이젠 누군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기는 '집'이 됐다.

그렇다면 고시원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최초 고시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대략 1980년 안팎 우리 사회에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택 재개발 열풍으로 달동네가 아파트로 바뀌기 시작해 서울에서 싸게 구할 수 있는 집이 없어지기 시작한 때다.

1985년 서울대 대학신문이 쓴 '우리들의 대학촌'이라는 특집 기사를 보면 당시 고시원이 대학 인근에 상당수 생겨 영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이렇다. "신림 봉천동의 산을 끼고 난립해 있는 20여개의 소규모 고시원의 존재도 엄밀한 의미에서 대학촌의 한 '기형'이다."

'기형'이라고 여겨졌지만 당시에도 고시원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끌었다. 1985년 3월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면 서울대 주변의 고시원은 월 9만~10만원 수준이었다. 반면 하숙비는 독방에 묵으면 한 달에 16만원이었다고 한다. 자취방의 월세는 3만~6만원으로 고시원보다 쌌지만 보증금 20만~50만원을 줘야 했다.

학생들의 저렴한 주거 공간이었던 고시원이 다양한 인간 군상의 보금자리가 된 것은 수요에 비해 충분히 공급되지 못했던 '집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 전남일 가톨릭대 교수가 쓴 '집-집의 공간과 풍경은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는 고시원 등 한 칸짜리 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오늘날의 주거 형태의 시작을 구한말의 토막집까지 거슬러 올라가 설명한다. 토막집은 당시 농촌에서 쏟아져 나온 빈민 계층이 살았던 허술한 움막집이다.

토막집에 살던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에는 주인집에 더부살이를 하며 행랑에 살았다. 한국전쟁 이후엔 변두리의 판잣집으로 갔다. 1960년대엔 달동네와 옥탑방 등이 생겨났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반지하 셋집과 쪽방촌이 나타났다. 이후 고시원이 등장하면서 가난한 1인 가구의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도시로 유입된 이들이 갈 곳이 없어 만들어 살기 시작한 토막집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IMF 경제 위기 등 사회적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불충분한 주거 형태가 등장했던 일련의 과정이 오늘날 고시원으로 이어지는 한 칸짜리 집의 역사라는 것이다.

[고시원의 삶]①단칸방 전전하는 '주거 난민' 청년들
[고시원의 삶]②우리는 언제부터 고시원에서 살았을까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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