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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도시이야기]빗살무늬토기부터 아파트까지, 석기시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암사동'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최종수정 2017.08.11 15:34 기사입력 2017.08.11 15:34
암사동 선사유적지 일대 재현된 움집의 모습(사진=아시아경제DB)
암사동 선사유적지 일대 재현된 움집의 모습(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이현우기자]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을 꼽으라면 보통 조선시대 도성이 있었던 시청 일대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가장 역사가 유구한 마을은 강동구에 위치한 '암사동'이다. 국사교과서에도 나와 있듯 암사동에는 지금으로부터 6000여년전, 신석기 시대의 주거지가 있으며 이 유적은 사적 제267호로 지정돼있다.
 
암사동 선사주거지는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유적 중 최대 규모의 유적이며 온전한 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유적지다. 크게 3개 시대의 유적이 동시에 발견됐는데 가장 땅속 깊은 곳에서는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한 신석기 문화층이, 그 위에는 민무늬토기를 썼던 청동기 문화층, 그리고 맨 위층에서는 백제시대 쇠도끼 등이 출토됐다.
 
삼국시대까지는 송파구에 위치한 몽촌토성과 함께 백제와 고구려간 군사적 경계지였다가 통일신라시대엔 사찰과 함께 마을이 형성됐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이 지역에 있던 9개의 절을 '구암사'라 불렀는데 이 구암사가 있는 동네라 해 암사란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광주목에 속했으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경기도 광주군에 속해있었다.
 
조용했던 암사리가 유명해진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토기와 석기 등 땅속에 묻혀있던 신석기 유물들이 다량으로 노출되면서부터다. 이때 일본 고고학자들은 당시 암사리 한강변 일대에서 막대한 양의 토기와 석기를 수습했다고 한다.

암사동 신석기유적지에서 출토된 첨저형 빗살무늬토기(사진=아시아경제DB)
암사동 신석기유적지에서 출토된 첨저형 빗살무늬토기(사진=아시아경제DB)

특히 '빗살무늬토기'의 발견은 화제가 됐다. 빗살무늬토기가 일본의 석기시대인 죠몬시대 토기들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당시 일본 학계에서는 이를 '내선일체(內鮮一體)'론의 중요한 증거인 것처럼 선전하며 역사를 왜곡했다. 현재는 강동구에서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해 이 선사유적지 전체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이런 암사리가 서울 일부가 된 것은 해방 이후인 1963년부터였다. 당시 성동구로 편입됐던 암사동은 이후 1975년 강남구에 속했다가 1979년 강동구의 신설로 오늘날 강동구 암사동이 됐다. 1970년대 한강개발사업과 맞물려 현대적인 도시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신석기시대부터 현대건물까지 다양한 역사시대가 공존하는 마을이 됐다.

암사동 일대 항공조감도(사진=아시아경제DB)
암사동 일대 항공조감도(사진=아시아경제DB)
 
사실 암사동에는 선사주거지 외에 서울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광주이씨 광릉부원군파 묘역과 구암서원(九岩書院) 등 조선시대의 유적들도 있다. 또 무형문화재로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라는 독특한 풍습도 남아있다. 이는 상갓집에서 출상하기 전날 상여꾼들과 선소리꾼들이 모여 고인이 편안하게 저승길에 가도록 기원하는 풍습이다.
 
현재 암사동은 강남권의 재건축 이슈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총 6000가구에 육박하는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암사동 롯데캐슬퍼스트, 암사e편한세상 등 암사동 일대 아파트에도 매수세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 자체의 도시재생 시범사업지도 암사동 일대에 있다. 서울시는 암사1동 일대를 지역의 역사, 문화 자원과 연계된 주거지로 재생할 계획이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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