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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종어보'의 주인인 덕종은 왜 조선왕 계보에 없을까?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최종수정 2017.08.23 14:34 기사입력 2017.08.23 14:34
일제강점기 모조품으로 알려지면서 전시 논란에 휩싸인 덕종어보(사진=연합뉴스)
일제강점기 모조품으로 알려지면서 전시 논란에 휩싸인 덕종어보(사진=연합뉴스)

최근 모조품 논란에 화재가 된 '덕종어보(德宗御寶)'는 대체 조선시대 어느 왕의 것일까? 앞에 붙은 시호를 살펴봐서는 덕종이란 임금의 것이 분명하나 조선왕 계보를 아무리 찾아봐도 덕종이란 임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덕종이란 임금은 살아서 임금노릇을 해보지 못하고 죽어서 임금으로 추존된 왕이기 때문이다. 덕종은 조선 제 7대 임금 세조의 맏아들이자 9대 임금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懿敬世子)를 후에 성종이 왕으로 높여 죽어서 왕이 된 인물이다. 원래 어릴 때 이름은 숭(崇)이었는데 장(暲)으로 고쳤으며 자는 원명(原明)이다.

1438년 당시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의 맏아들로 태어난 의경세자는 7살 때 도원군(桃源君)으로 봉해졌으며 그때까지는 그저 왕실 종친 중 한명이었다. 이후 1455년 아버지 수양대군이 세조로 등극하면서 세자가 됐다. 이후 20세에 사망할 때까지 세자로서 교육받았다.

덕종의 능인 경릉(敬陵)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덕종의 능인 경릉(敬陵)의 모습(사진=위키피디아)

서예를 잘했고 평소 학문을 즐기긴 했으나 몸이 병약해 잔병치레를 자주했다는 이야기 외에 별다른 기록을 찾기 힘들다. 겨우 20세 나이로 요절했기 때문인데 민간에서는 단종을 죽인 업보로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의 원혼이 저주를 내려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가 죽은 동궁전이 원래 단종이 살았던 곳이란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이는 민간의 소문에 불과하며 실제 의경세자는 단종이 죽기 한달 전에 먼저 죽었다. 신숙주의 변절에 실망한 신숙주의 아내가 자살했다는 민간 전설과 함께 당대 아무런 근거없는 허황된 이야기로 알려진 전설 중 하나다. 그만큼 단종의 죽음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예종의 능인 창릉(昌陵)의 모습(사진=두산백과)
예종의 능인 창릉(昌陵)의 모습(사진=두산백과)

그의 죽음으로 왕위는 둘째 동생인 해양대군에게 넘어갔으며 그가 바로 조선 제 8대 임금인 예종이다. 원래 예종도 몸이 병약했고 의경세자와는 12년이나 나이차가 났기 때문에 왕위와 거리가 멀었으나 형의 갑작스런 병사로 느닷없이 세자가 됐고, 19세 때인 1468년에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제위 1년3개월만에 그 역시 병사했다. 조선시대 자연사 한 임금 중 가장 단명한 임금이 됐다.

원래 예종에게는 12세 때 본 아들 인성대군이 있었으나 인성대군이 3세에 사망한 뒤였고 그의 동생인 제안대군(齊安大君) 역시 예종이 죽은 당시 고작 4살이었다. 이에 따라 왕위쟁탈전이 예상되자 의경세자와 예종의 어머니이자 세조의 왕비였던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수렴청정을 실시하기로 하고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者乙山君)을 왕으로 삼았다. 이가 바로 조선 9대 왕인 성종이다.

(사진=KBS 역사저널 그날)
(사진=KBS 역사저널 그날)

사실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의경세자의 아들인 성종이 왕이 된 이유는 모후인 인수대비(仁粹大妃)의 역할이 컸다. 원래 인수대비는 조선 전기 문신인 한확(韓確)의 딸로 당대 막강한 위세를 떨치던 청주 한씨 가문 출신이다. 한확은 그의 누이가 명나라 성조(成祖), 즉, 영락제의 후궁으로 뽑혀 강혜장숙여비 한씨가 되면서 명나라의 광록시소경이란 벼슬도 받은 거물급 정치인이었다. 그의 여동생은 명나라 5대 황제인 선덕제의 후궁 공신태비 한씨가 돼 영화를 계속 누렸다.

이로 인해 세종조 때부터 조선왕실은 이 집안과 사돈을 맺은 상태였다.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은 계유정난 당시에는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됐고 자신의 딸을 의경세자의 세자비로 들여보낼 정도였다. 더구나 인수대비는 앞서 자을산군과 한명회의 딸을 혼인시켜 사돈지간이 된 상태였다. 성종은 막강한 외가 뿐만 아니라 역시 강력한 처가까지 가장 든든한 후원자를 둔 왕족으로 떠올랐으며 이에따라 친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을 비롯해 다른 왕족들을 모두 제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이런 여러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가 원래 받아야 할 왕위를 잇게 된 성종은 아버지인 의경세자를 왕으로 추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조정에서 논란이 일었다. 왕 지위 격상까지는 찬성한 신하들도 종묘에 신위를 모시는 것에는 반대하고 나선 것. 이에 성종은 결국 왕이 된지 6년이 된 1475년, 독단적으로 이 일을 밀어붙여 드디어 의경세자에게 덕종이란 시호를 올리는데 성공했다. 우여곡절을 겪은 어보 뿐만 아니라 덕종이란 임금 자체의 이름이 붙는데도 이렇게 여러 일들을 겪었던 것이다.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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