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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멕시코의 매국노, '말린체'는 정말 민족반역자일까?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최종수정 2017.08.29 14:54 기사입력 2017.08.29 14:54
말에 함께 올라탄 코르테스와 말린체 그림(사진=위키피디아)
말에 함께 올라탄 코르테스와 말린체 그림(사진=위키피디아)

우리나라에서는 매국노의 대명사로 흔히 거론되는 인물로 이완용이 있듯, 멕시코도 매국노의 대명사가 된 한 역사적 인물이 있다. 오늘날 멕시코의 전신,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킨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의 부인이었던 '말린체(Malinche)'가 그 주인공이다.

말린체는 처음엔 아즈텍 제국과 옛 마야 왕국이 있던 접경지역의 부족 일원이었다고 전해지며 아즈텍 인근의 타바스코에서 노예로 살아갔다고 한다. 그곳 부족장이 코르테스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뒤 화평의 선물로 여자노예 20여명을 바쳤는데, 개중 한명이 말린체였으며 빼어난 외모와 뛰어난 두뇌를 지닌 그녀는 단숨에 코르테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의 부인이 됐다고 한다.

대단히 총명했던 말린체는 단숨에 스페인어를 익혀 코르테스는 물론 코르테스의 부대원들과도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준이 됐으며 아즈텍 제국의 공용어인 나와틀어를 비롯해 각종 중남미 현지의 언어, 풍습, 사고방식, 종교에 박식했다. 그녀는 코르테스의 통역사 노릇을 하며 현지정보를 모두 가져다줬고, 코르테스는 이 말린체의 정보를 토대로 아즈텍 제국에 반감을 품고 있던 틀락스칼라족과 토토카나족과 연합하여 아즈텍 제국의 중심도시인 테노치티틀란을 공격해 아즈텍제국을 멸망시키는데 성공한다.

의자에 앉아있는 코르테스 옆에서 통역 중인 말린체 그림(사진=위키피디아)
의자에 앉아있는 코르테스 옆에서 통역 중인 말린체 그림(사진=위키피디아)

현대 멕시코에서 그녀를 매국노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녀가 옆에서 통역사를 하며 물심양면으로 돕지 않았다면 고작 500여명 정도였던 스페인 군대에 인구 3000만이 넘던 아즈텍제국이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란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스페인군이 아즈텍 제국과의 전투에서 압도적 우세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양군의 무장력 차이가 그만큼 엄청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500명 정도의 소규모 병력으로 수십만에 이르는 아즈텍 군을 괴멸시킨 것은 현지 동맹들을 적절히 활용한 말린체의 정치력이 크게 한몫했다.

19세기 이후 중남미 일대 국가들이 유럽 본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민족주의가 자리잡으면서 말린체는 완전히 역적이 됐고 민간에서는 '라 요라나(La Llorana)'라는 귀신으로 불릴 지경에 이르렀다. 이 말린체 귀신은 남자를 시름시름 앓게해 죽이거나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남자아이의 목숨을 거둬가는 악령으로 불린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녀가 과연 매국노였을지 여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현대 멕시코의 전신으로 취급되는 아즈텍이란 제국이 당시 중남미 지역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의 정권이었으며 이들도 사실 딱히 멕시코 원주민 부족이 세운 제국도 아니었다. 오히려 말린체를 비롯해 코르테스에 연합해 아즈텍을 무너뜨린 부족들 입장에서는 백인 동맹과 힘을 모아 압제자들을 무찌른 독립의 역사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아즈텍 제국의 실체에 대해 파헤칠수록, 말린체를 변호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커지게 된다.

아즈텍 삼각동맹의 지배영역(사진=위키피디아)
아즈텍 삼각동맹의 지배영역(사진=위키피디아)

원래 아즈텍 제국은 13세기에 북미대륙 북쪽에서 멕시코 고원으로 내려온 메히카 부족이 세운 나라로 군사력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성장한 국가였다. 우리는 흔히 '제국'이란 표현을 쓰지만 사실 아즈텍은 한명의 황제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통치되는 중앙집권적 제국이 아니라 테노치티틀란, 텍스코코, 틀라코판이란 3개 도시가 군사동맹을 맺고 주변 주역들을 군사력으로 통치하는 도시국가 동맹체였다. 이를 두고 '에슈카 틀라톨로얀'(excan tlatoloyan), 우리말로 '삼각동맹'이라고 부른다. 아즈텍 전국이 만약 당대 중국처럼 지방 곳곳까지 관료제로 통치됐다면 코르테스가 그처럼 순식간에 거대한 제국을 해체시키지 못했을 터였다.

이 느슨한 지방행정의 한계를 알고 있었던 아즈텍 삼각동맹은 매우 잔인한 방식으로 지방을 통치했다. 그것은 특정 지역의 부족들이 군사력이 강해지거나 인구가 급증해 삼각동맹을 위협할 군사력이 생기면 일부러 전쟁을 일으킨 후, 그 지역 청년들을 대거 끌고와서 수만명을 한꺼번에 신에게 바치는 인신공양 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아즈텍 삼각동맹의 상대적 우위는 계속 지속되고 내분의 싹을 아예 제거했다.

아즈텍의 이런 내부 전쟁을 흔히 '꽃 전쟁'(xochiyaoyotl)이라 불렀다. 많은 살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신공양용 포로를 잡기 위한 전투라 날카로운 무기들을 배제한 채 벌인 전쟁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아즈텍 삼각동맹은 전쟁 전 스파이로 '포치테카'(pochtechah)라는 일종의 외교관을 보내는데, 이들이 상대 부족들에게 반역을 부추겨 전쟁이 일어나면 미리 준비된 아즈텍 병사들이 이 부족을 공격, 포로를 끌고오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이 방식으로 아즈텍은 무려 300년 가까이 오늘날 멕시코 일대를 다스렸으며 매해 수많은 청년들이 희생돼야했던 멕시코 원주민 부족들에게 아즈텍은 철천지 원수의 나라였다.

코르테스와 현지 원주민 부족들이 아즈텍 삼각동맹군을 물리친 오툼바 전투 그림(사진=위키피디아)
코르테스와 현지 원주민 부족들이 아즈텍 삼각동맹군을 물리친 오툼바 전투 그림(사진=위키피디아)

이러다보니 코르테스가 아즈텍 삼각동맹의 중심도시인 테노치티틀란을 공격하자 주변 부족들이 일제히 봉기해 코르테스를 도왔다. 코르테스는 자신의 소규모 병력과 함께 틀락스칼라, 토토카나 족 등 원주민 병력 20만명을 동원할 수 있었고 이들 새로운 동맹은 아즈텍 삼각동맹군을 철저히 무너뜨렸다. 이런 전략을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이 바로 말린체였다.

대규모 살육전이 없는 꽃 전쟁에 익숙한 아즈텍 군대는 무차별 살육전을 벌이는 코르테스군과의 싸움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흑요석을 박은 창과 화살 등 석기시대 무기 외에 별다른 살육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철제 무기와 갑옷, 화승총과 대포로 무장한 스페인 군대를 완전히 죽이기도 힘들었다. 아즈텍 병사들은 숫적 우세를 앞세워 소수 스페인군을 포로로 붙잡는데는 성공했으나 죽이지 않고 포로로 끌고 가다가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동맹인 원주민 부족민에게 상처를 치료받는 코르테스 그림(사진=위키피디아)
동맹인 원주민 부족민에게 상처를 치료받는 코르테스 그림(사진=위키피디아)

더구나 서유럽의 온갖 전염병과 비위생적 환경에서 살아남은 스페인군인들은 본인들은 잘 몰랐지만 한명 한명이 세균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유럽처럼 대규모 전염병을 옮는 가축을 대량으로 기르지 않던, 전염병과 관련해 청정했던 중남미 지역은 콜레라, 천연두를 비롯한 각종 전염병에 대한 면역이 없었다. 이것은 스페인군에 대한 공포심리를 더욱 키우는데 한몫했다.

결국 아즈텍 멸망 이후 코르테스와 동맹을 맺고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부족들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도 상당한 자치적 권리를 누리며 스페인에 동화됐다. 말린체 역시 코르테스와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고 코르테스가 본국으로 송환돼 돌아간 이후에는 다른 스페인 군인과 재혼해 혼혈 아이를 낳는다. 아즈텍의 압제에서 부족을 구한 이 여인의 일대기가 천하의 악녀, 매국노로 변하게 된 것은 그녀가 죽고 300년이란 시간이 더 흐른 뒤의 일이었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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